본문 바로가기
책방의 먼지/철학방

[크리톤] / 플라톤

by 책방의 먼지 2019. 7. 22.
반응형

 

소크라테스의 법정에서의 재판 사건에서 그 후 사형에 이르는 날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시간순으로 변명-> 크리톤-> 파이돈이 있다. 지난번 변명을 읽고 나서 그 뒷 이야기도 궁금해진 나는 나머지 두 권의 책을 사서 우선 크리톤부터 읽어 보았다.

이 책에는 단 두 명의 화자가 있다. 크리톤과 소크라테스이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와 죽마고우 사이이며 부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변명」에서 고소인이 사형 대신 벌금형을 제의했을 때 보증을 썼던 인물 중 한 명이었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를 자주 찾아갔던 인물인 만큼 그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친구이다. 책에는 떠나갔던 배(당시 아테네에서는 종교행사를 위해 사절단을 태운 배가 델로스로 갔다 되돌아올 때까지는 공적으로 사형 집행을 금했었다)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소크라테스를 탈옥시키기 위해 설득하러 간 당일 새벽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 내용을 들여다보면 크리톤이 감옥살이 중인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그가 잠든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가 깨어나자 크리톤은 오늘 배가 도착할 거란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오늘이 사형 집행일이 될 것이라 전하자 소크라테스는 내일 배가 도착하고 모레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며 주변의 소문보다 자신의 꿈을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짧은 에피소드 후에는 크리톤의 탈옥 제시에 대한 크게는 두 차례의 고찰이 책 전반에 담겨있다.

첫 번째는 크리톤이 다수에 의한 평판에 신경을 쓰며 그를 구해내고자 한다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전문적인 지식을 갖춘)의 비난을 두려워하고 그의 칭찬을 반겨야 한다라는 반론들이 주 내용을 이룬다.

그 다음 고찰은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을 가장 중시해야 하며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 논의이다. 소크라테스는 훌륭하게 사는 것과 아름답게 사는 것과 정의롭게 사는 것은 같다고 하며 ‘정의로운 것’에 대한 숙고가 책 마지막까지 이어지며 크리톤은 결국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정의로운 것에 대해 말한 것들 중 인상적인 것을 꼽자면

“어떤 사람에게든 보복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도 해롭게 해서도 안되네. 그들한테서 무슨 해를 입든 말이네...... 소수의 사람만이 이런 판단을 하며 장차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판단하는 사람들과 이렇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동의 논의 기반을 갖지 못하며, 상대방의 숙고 결과를 볼 경우 서로 무시할 수밖에 없다네.... 누군가와 합의한 것들이 정의롭다면 그는 그것들을 이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겨야 하는가?”

이 말을 통해서 크리톤과 정의로운 것에 대한 공동의 기반 위에 서며 그 후 소크라테스는 탈옥에 대해 법률을 의인화하며 빗댄 대화를 통해 크리톤에게 탈옥은 정의롭지 않다고 설명해간다.     

“우리(법률)와 합의를 한 것이라고 우리(법률)는 말하요. 그리고 복종하지 않는 자는 세 가지 방식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요. 그건 태어나게 해 준 우리에게 그가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고, 양육받게 해 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에게 복종하기로 합의하고서 복종하지도 않고, 우리가 뭔가를 잘못하는 경우 우리를 설득하지도 않기 때문이오. 우리는 이런 대안을 제시하고 명령한 것들을 이행하도록 거칠게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오. 우리는 두 선택지 중 하나를, 즉 설득하거나 아니면 이행하는 걸 허용했는데, 그는 이것들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 것이오.”
”하지만 현 상태에서 당신이 떠나간다면, 당신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당한 상태로 떠나갈 것이오. 법률인 우리한테 서가 아니라 사람들한테서 그런 일을 당한 상태로 말이오. 그런가 하면 당신이 아주 부끄럽게도 보복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고 보복으로 해를 입히고, 당신 자신이 우리와 맺은 합의와 계약을 어기며, 특히나 해를 주어서는 안 될 이들에게, 즉 당신 자신과 친구들과 조국과 우리에게 해를 주고서 여기서 나간다면, 우리는 당신이 살아 있을 땐 당신에게 화를 낼 것이고, 저승에서는 우리의 형제인 하데스의 법률이 당신을 반겨 맞이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관여할 수 있는 한 우리마저 파멸시키려 한 것을 알고서 말이오. 그럼, 크리톤이 우리보다는 그 자신이 말하는 것을 당신이 행하도록 설득하지 못하게 하시오.”  

먼지의 단상: 책을 다 읽고 나면 처음 나눈 대화에서 이미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대중(배가 온다는 소문)에 신경을 쓰는 크리톤과 그에 비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이(마치 예지몽인듯하니 신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의 말을 믿는 소크라테스, 사형집행(합의된 것)을 막고 복종하지 않으려는(정의롭지 못한 일을 제안하는) 크리톤과 사형집행을 받아들인(정의로운 것을 실행하려는) 소크라테스로 말이다.

자신의 이상적인 선을 윤리적으로 실천하려 한 소크라테스의 태도가 잘 표명된 책이란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그것은 '침묵은 과연 동의를 뜻하는가?'인데 책의 후반부를 읽으며 지속적으로 드는 생각이어서 찬찬히 고찰해봐야겠다.  

 


▶관련글: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반응형

'책방의 먼지 > 철학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로사회] 한병철  (0) 2023.09.07
철학자와 늑대 / 마크 롤랜즈  (0) 2020.01.09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0) 2019.07.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