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취리히로 몰려든 예술가와 시인 그룹은 즉시 잡지 <카바레 볼테르>(1916)를 창간했다. 이 저널을 통해 다다는 유럽 전역과 북미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정신분석학이 미술을 승화적인 것(정신의 취약한 부분을 형성하는 동물적 본능 위로 떠오르는 방식)으로 이해했다면 다다는 (시와 회화의 정신적 야망을 조롱하며) 그것을 탈승화적인 것으로 보았다. 라하르트 휠전베크는 다다의 짧은 역사에서 "독일의 시인은 멍청이의 전형이다....... 그는 세계가 '정신'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얼마나 엄청난 거짓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썼다.
1917년에 취리히에서 발행된 <다다>는 트리스탕 차라가 편집했으며 곧이어 조지 그로스의 포토몽타주 같은 다다의 작품을 모아놓은 <다다코>가 발행됐다. '다다'라는 단어가 어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지는 <다다코>에 실린 기사에 잘 나타나 있다. "다다는 뭐지? 예술? 철학? 정치? 화재보험 정책인가, 종교인가? 다다는 정말 에너지일까? 혹은 아무것도 아닌가, 아니면 전부인가?"
미국의 다다 운동에서는 만 레이가 1915년부터 <리지필드 개죽>을 비롯하여 마르셀 뒤샹과 함꼐 정기간행물 <뉴욕 다다>를 발행했다. 다다 저널의 국제적인 특징은 하노버에 있는 쿠르트 슈비터스의 <메르츠>와 바르셀로나에서 발행된 프랑시스 피카비아의 <391>의 일러스트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프랑스의 <라 누벨 르뷔 프랑세즈>는 전쟁 동안 폐간됐다가 1919년에 복간됐다. 이 잡지는 "'다다 다다다 다다 다'라는 마술 같은 음절들의 무한 반복"에서 비상식성의 징후가 나타나는 '새로운 유파'를 비난했다. 이 논쟁에 참여한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다다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을 때 해야 할 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연달아 적힌 것 모두가 초점이 약간씩 빗나간 것처럼 보였다....... 다다, 거기에 도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두 음절은 '울림이 큰 공허', 절대적 무의미를 완성했다."
사실 지드의 소설 「위조지폐범」(1926)에서 범죄자 스트루빌루는 다다 저널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상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잡지를 편집한다면 그 이유는 부풀어 오른 것을 바늘로 콕콕 찌르기 위해서, 좋은 느낌과 말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약속 어음을 무효화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제1호에서 그는 뒤샹의 콜라주 「L.H.O.O.Q」를 염두에 두고 "얼굴에 콧수염을 붙인 「모나리자」 복제품"이 생길 거라고 말했다. 이 추상과 비상식성의 연결은 바로 지드의 서사에 나타나는 기호의 의미를 비우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스트루빌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모든 일이 잘된다면, 누구나 미래의 시인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시인이 치욕감을 느끼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 2년 이상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감각, 모든 의미는 반시적인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비논리성이 우리의 길잡이별이 되도록 할 것이다."
▶관련글: 1916년a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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