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책 속 상자33 [잡지] 다다 저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취리히로 몰려든 예술가와 시인 그룹은 즉시 잡지 (1916)를 창간했다. 이 저널을 통해 다다는 유럽 전역과 북미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정신분석학이 미술을 승화적인 것(정신의 취약한 부분을 형성하는 동물적 본능 위로 떠오르는 방식)으로 이해했다면 다다는 (시와 회화의 정신적 야망을 조롱하며) 그것을 탈승화적인 것으로 보았다. 라하르트 휠전베크는 다다의 짧은 역사에서 "독일의 시인은 멍청이의 전형이다....... 그는 세계가 '정신'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얼마나 엄청난 거짓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썼다. 1917년에 취리히에서 발행된 는 트리스탕 차라가 편집했으며 곧이어 조지 그로스의 포토몽타주 같은 다다의 작품을 모아놓은 가 발행됐다. '다다'라는 단어가 어떤 호기심을.. 2019. 9. 13. [사건] 곰의 가죽 (투자 대상이 된 미술품) 아마도 레디메이드는 예술과 시장 간의 복잡한 관계를 가장 잘 드러낸 미술 형식일 것이다. 대량생산된 사물에 미학적 가치를 부여한 결과 그 경제적 가치는 폭등했다. 반면 이렇게 고가의 작품을 거래하는 일은 명품 구매와 동일한 구조를 지니게 됐고 그 결과 작품은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방가르드는 그들이 노출시키고자 했던 자본의 논리와 끝없이 연루되는 구조적 모순에 봉착하게 됐다. 아방가르드 미술이 훌륭한 투자 대상이라는 사실은 1904년 사업가 앙드레 르벨의 투자를 통해 입중된다. 르벨은 열두명의 투자자와 함께 아방가르드 미술을 사들이는 컨소시엄인 '곰의 가죽'을 발족하고 10년 후에 그들이 구매했던 작품들을 경매에 붙였다. 르벨의 그룹은 발 빠르게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품을 대거 구입하기 시작했.. 2019. 9. 11. [인물] 기욤 아폴리네르 기욤 알베르 아폴리네르 드 코스토로비츠기(Guillaume Albert Apollinaire de Kostrowitzky, 1880~1918)는 폴란드 하급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프랑스 리비에라의 국제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열일곱 살 때 시인 폴 베를렌과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쓴 시와 기사를 실은 무정부주의적 상징주의 육필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아폴리네르는 알프레드 자리와 앙드레 살몽이 활동 중이던 파리 아방가르드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1903년에 피카소와 만났다. 그는 살몽, 막스 자코브 등과 함께 이른바 '피카소 패거리'를 조직했다. 1905년 예술 비평을 쓰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진보적인 회화를 지지했고 1913년에는 입체주의 화가들을 출판했으며 같은 해에 .. 2019. 9. 8. [인물]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 에티엔-쥘 마레 영국인 에드워드 마이브지리(Eadweard Muybridge, 1830~1904)와 프랑스인 에티엔-쥘 마레(Etienne-Jules Marey, 1830~1904)는 서로 운명처럼 결합돼 있다. 그들은 같은 날 태어나서 같은 날 죽었으며 둘 다 움직임에 대한 사진 연구를 처음 도입했는데, 이것은 미래주의 미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노동과 시공간 일반의 근대적 합리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원래 미국 서부와 중앙아메리카 풍경을 찍는 사진가로 이름을 알린 마이브리지는 1872년에 백만장자이자 전 미국 주지사였던 릴랜드 스탠포드의 부탁으로 말이 뛰는 모양에 대한 논란에 참여하게 됐다. 팰러앨토에서 여러 개의 카메라로 말을 찍은 마이브리지는 이 사진들을 격자 형태로 정렬한 다음, 그것을 다시 촬영하여 수평 방향과 수.. 2019. 9. 3. 이전 1 2 3 4 5 6 7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