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에드워드 마이브지리(Eadweard Muybridge, 1830~1904)와 프랑스인 에티엔-쥘 마레(Etienne-Jules Marey, 1830~1904)는 서로 운명처럼 결합돼 있다. 그들은 같은 날 태어나서 같은 날 죽었으며 둘 다 움직임에 대한 사진 연구를 처음 도입했는데, 이것은 미래주의 미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노동과 시공간 일반의 근대적 합리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원래 미국 서부와 중앙아메리카 풍경을 찍는 사진가로 이름을 알린 마이브리지는 1872년에 백만장자이자 전 미국 주지사였던 릴랜드 스탠포드의 부탁으로 말이 뛰는 모양에 대한 논란에 참여하게 됐다. 팰러앨토에서 여러 개의 카메라로 말을 찍은 마이브리지는 이 사진들을 격자 형태로 정렬한 다음, 그것을 다시 촬영하여 수평 방향과 수직 방향으로 훑어볼 수 있게 했다. 그가 쓴 「움직이는 말」은 스탠포드에 의해 일부분이 삭제된 채 1882년에 발행됐다. 이 해에 유럽으로 강연회를 떠난 그는 파리에서 마레, 사진가 나다르, 살롱 화가인 에르네스트 모세니에, 생리학자인 헤르만 폰 헬름홀츠의 환영을 받았는데, 이것은 인간 지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각의 단위를 기록한 마이브리지의 작업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미술가로 생각했던 마이브리지와 달리, 마레는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해 그래픽을 사용하는 생리학자였다. 마레는 1878년에 과학 잡지인 《라 나뒤르》에서 마이브리지의 작업을 처음 접한 후 운동을 따로따로 기록하는 정확하고 중립적인 방법인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마레는 처음으로 단일 시점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찍을 수 있는 원형 판이 달린 사진 총을 고안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 달린 구멍 뚫린 원반을 사용하여 움직임을 일정 간격으로 잘라 하나의 사진판에 기록했다. 이 작업을 '크로노포토그래피(동체 연속 사진술)라 칭한 마레는 이중인화를 막기 위해 피사체 전체에 검은 옷을 입히고 작은 금속 조각을 팔과 다리에 부착했다. (동물을 찍을 때는 종이를 사용했다.) 이 장치는 단일 시점이 볼 수 있는 지각의 범위와 시간적. 공간적으로 일치하는 영상을 복원해 냈다. 이 방식은 일관된 시점이나 이미지 사이에 간격이 없는 마이브리지의 방법보다는 과학적이었지만 시각의 명백한 연속성을 분열시킨다는 점에서는 덜 과격했다.
이와 같은 시각의 분열은 특히나 파괴적인 속도를 추구하는 미래주의자와, 과거에는 지각되지 않았던 시공간의 차원을 탐구하는 마르셀 뒤샹 같은 미술가들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이들 미술가들이 마이브리지와 마레처럼 개인적인 작업을 뛰어넘는 역사적 변증법(20세기 내내 시각의 해방과 재훈육화를 통해 진행된 지각의 끊임없는 혁신이라는 근대의 변증법)에 가담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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