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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작가 1.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says.... 1964~65

by 책방의 먼지 2019.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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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아주 오래 전에 발췌를 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말, 글, 생각들이다. 작업실에 놓여있던 전시 도록 책자였던 것 같은데... 정확한 명이 기억나지않아 아쉽다.... 하지만 그의 생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직접적인 이야기들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에 가끔 꺼내 읽어보는데 여기에도 옮겨본다.

 


정말 근사한 일을 아는가? 엽서를 베끼는 일처럼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일이 회화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리고 사슴, 비행기, 왕, 비서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릴 수 있는 자유, 더 이상 창작하지 않아도 되는 것, 회화라고 알려진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 색, 구성, 공간 그리고 지금까지 알아왔던 그리고 생각해왔던 모든 것이 미술의 전제 조건이기를 갑자기 멈춰버리는 것.
내 그림들이 모델과 다르다면 이는 내가 원해서도 아니고 나의 창의적 의도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테크닉의 문제다. 테크닉은 모델, 사진, 그리고 회화만큼 실제적이기에, 나의 의지와 영향력을 넘어서 있다. 어떤 대상이 그림의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이 오른쪽에 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왼쪽으로 옮기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캔버스에 유채를 관행적으로 입히는 화면을 통해 나의 그림은 사진과 관계가 멀어지는 대신 완전한 회화가 된다[이는 또한 그 속에서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하는 바이다]. 다른 한편 그것은 사진을 다른 모든 그림들과 구분하게 해주는 그 무엇을 완벽하게 가진다는 점에서 사진과 똑같다.

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계획을 짜지도 창작하지도 않는 이유이다. 나는 무엇을 첨가하지도 빼지도 않는다. 나는 동시에 이 일이 내가 계획하고, 고안해내고, 수정하고, 만들어내고 조작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겠다. 
나는 모든 것을 아주 명확하고 단순하고 조건에 구애되지 않은 그대로 두고 싶다. 또한 분방하며 비규범적인 예술을 하고 싶다.
누구나 나처럼 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한 장의 사진을 그대로 베낀다면 이는 작업과정의 일부분이지 직접적인 현실 대신에 그것의 재생산물, 즉 간접적으로 생겨난 세상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직관을 성격 지우는 표시가 결코 아니다. 내가 사진을 사용하는 방식은 램브란트가 드로잉을 사용한 방식 또는 베르메르가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한 방식과 같은 맥락에 있다. 결과물이 모사한 사진처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나는 사진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재상산 혹은 즉물성은 따라서 공허한 개념이다.
사진은 그림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재현한다. 카메라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본다. ‘자유소묘’에서 대상은 그 부분, 치수, 비례 그리고 기하학적 형태로 인식된다. 이 구성 요소들은 약호로서 인지되며 상호 연관된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이는 실재를 왜곡하고 특정한 양식화를 유도하는 하나의 추상이다. 만일 프로젝터기계의 도움을 빌어 윤곽을 그린다면 이런 번거로운 인식과정은 회피할 수 있다. 대신에 인식되지 않은 무엇이 [비형태적으로] 보여지고 만들어진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면,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고 무엇을 왜곡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팔의 길이, 폭, 무게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그 팔을 인식했다고 믿는다면 그 인식은 기만이 된다. 

-리히터, 메모, 1964-65(1)


나는 양식이 없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사진, 자연, 내 자신, 내 그림들. [왜냐하면 양식은 폭력적이고 나는 폭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은 가르침과는 상관없다. 가치 있고 의미를 가진 그림은 나쁜 그림이다. 그림은 혼란스러운 것 비논리적인 것, 어리석음으로 표상된다. 그림은 약함을 드러낸다. 그것은 사물에게서 이름들과 의미들을 빼앗아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분명함을 갖게 한다. 그림은 의도나 주관을 허용하지 않는 모호하며 미완성인 상태 그래도 사물을 보여준다. 

나는 무엇을 흐릿하게 만들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흐릿하게 만드는 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내 회화의 인식적 특징이 아니다. 내가 그림에서 윤곽을 모호하게 하거나 변이의 과정을 표현했다면 이는 재현작업을 파괴하고 인위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화면의 유동적인 변화와 부드럽고 균일한 표면은 내용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재현한 바를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 [물감이 두껍게 칠해진 회화는 회화성을 아주 심하게 상기시키고 환영을 파괴한다.]

나는 모든 것을 동등하게 만들기 위해 흐릿하게 한다. 모든 것은 동등하게 중요하고 동등하게 무관하다. 내가 흐릿하게 하는 이유는 장인적이거나 예술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술적이고 부드럽고 완벽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모든 부분들이 서로에게 조금식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 흐릿하게 한다. 또한 나는 하찮은 정보의 과잉을 지워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초현실주의자이다.
[내가 모든 것을 사진에서처럼 ‘올바르게’,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그리기 때문에] 재현되어야 할 대상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라도 현실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그 대상은 중요하지 않으며 의미도 없다. 이것이, 재현된 그것 자체가 지워져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그림을 거꾸로 놓을 수는 없다]. 즉, 재현은 단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 것뿐이다. 그것은 그림을 위한 구실이 된다. [이 점이 바로 내가 사진을 사용하게 된 이유이다. 내게 있어, 사진은 내가 알지도 못하고 가치를 두지도 않는, 내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리고 내가 나 자신과 동일시하지도 않는 실재에 대한 기록이다.]

내 관심은 연속적인 색조, 풍경, 회색 표면, 그림 속의 공간, 그리고 그 교차점과 상호의존성에 있다. 만약 내가 이러한 구조의 전달자로서 대상을 지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나는 그 즉시 추상화를 그리러 갈 것이다. 
나는 대상에만 관심을 둔다. 그렇지 않다면, 주제를 선택하는 데 그렇게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아예 그리지도 않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비논리적인, 비실제적인, 비시간적인, 말도 안되는 사건의 발생, 동시에 논리적인, 실제적인, 시기 적절한, 인간적인, 따라서 움직이는 사건의 발생에 매료된다. 그리고 나는 동시성이 유지되는 식으로 그것을 묘사하고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떤 간여나 변형이라도 좀더 일반적이고, 구속력 있고, 지속적이며 포괄적일 수 있는 단순성과 간결성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     
 -리히터, 메모, 1964-6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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