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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미술

아는 대로 그리다

by 책방의 먼지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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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그랬다. "...... 나는 사물을 보는 대로 그리기보다는 아는 대로 그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회화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회화로 표현된 추상적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 해 동안 입체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1926년)

 

여기서 피카소가 말하는 아는 대로 그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또한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본다는 것은 아마도 대상을 진짜 같은 착각이 들도록 모사에 가깝게 그려내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전통적인 미술 표현이 그래 왔던 것처럼.

하지만 안다는 것은 더이상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대상을 변형해서 표현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전의 화가들이 대상을 변형시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위대한 화가들은 모두 형태를 변화시켜왔지만, 그들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그린 것은 아니었다.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1918~19

보이는 대로의 대상의 모사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피카소는 우선 그 대상을 해체했다. 요소요소들을 부분으로 보고 완전히 다르게 조합함으로써 자율적인 미술 구조물을 만들어 냈다.

 

피카소,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년

이 그림은 피카소가 바르셀로나 아비뇽 거리의 윤락가 내부를 그린 것인데 완성된 그림에서는 윤락가의 묘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작품 이후 피카소는 브라크와 입체주의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그들은 대상의 여러 시각에서 바라본 입체를 묘사하고 이를 분해해 평면에 새롭게 조합하였다. 이 방식은 원근법 이후 표현되어진 입체적이고 공간적인 환각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않고 화면에 평면성을 강조한다. 즉 회화 자체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조르주 브라크, <포루투갈인>, 1911년

개인적으로는 초기의 큐비즘 그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단일화된 색이나 그들이 만들어 낸 체계적 규칙이 내겐 조금 답답한 느낌을 주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순수 회화에 대한 가치와 그 이후 발전해 나간 피카소의 작업들은 회화에 자율성을 더해주어 무척이나 인상 깊게 바라보고 있다.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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