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미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무엇일까? 아마도 스핑크스, 피라미드, 미라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집트인들의 내세를 꿈꾸던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이집트 대부분의 예술이 영원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염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런 염원을 갖게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이집트라는 지역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집트는 사막지역으로 중간에 흐르는 나일강이 생명수 같은 역할을 한다. 즉 나일강 주변은 풍요롭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주는 반면 조금만 지나도 사막으로 둘러싸여 모래바람이 부는 불모지의 땅으로 덮여있다. 이집트인들은 생명을 주는 곳과 불모의 곳을 한 자리에서 같이 바라볼 수 있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범람하고 가라앉던 나일강을 바라보며 죽음 역시 일시적인 것이고 사후 다시 돌아와 영원히 살게될 것이란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의 이런 염원을 담은 인물상을 표현한 미술품들을 살펴보자.
이집트의 조각은 영혼이 다시 찾아오는 육체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져 생전의 모습과 최대한 닮게 만들어야 했고 훼손을 막기 위해 돌받침대를 남겨 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눈의 표현은 놀라운데, 유리알이나 보석을 넣어 반짝이듯 진짜 눈처럼 표현해 마치 영혼이 깃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각이 사실적인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 했다면 그와는 다른 평면에 표현된 인물들도 함께 보자.
실제로는 불가능한 자세이지만 신체의 각 부분들의 특징 중 본질을 드러낸다고 판단한 모습들을 조합해 표현했다. 이것이 이집트 미술의 그 유명한 특징인 정면성의 원리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정면성의 원리에 따라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 즉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진 이들은 주 대상보다 작게 그려지고 정면성의 원리도 따르지 않았다.
다양한 시점에서 본 부분을 한 화면에 조합해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한 방식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20세기 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큐비즘에서 말이다. 그들은 비록 사실주의적인 전통의 방식(원근법)을 파괴하고 자연의 여라가지 형태를 입체 조각으로 표현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 점에서 출발점은 다르지만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려면 한 방향에서 본 형태가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본모습을 조합한 것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질을 그리려한 이집트미술은 훗날 미술뿐 아니라 그리스 철학에도 영향을 끼친다.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의 본모습이라 생각한 플라톤의 사상에서 잘 드러나며, 그의 철학이 서양 철학을 오랫동안 지배하고 현재까지도 이어져오는 것을 보면 불멸을 꿈꾸던 이집트인들의 염원이 사상적으로는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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